예언자님은 (그에게 평화와 축복이 있기를) 571년 메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어머니의 이름은 아민에이시고 아버지의 이름은 압둘라이심니다. 외동이셨습니다. 예언자 모함메드님의(그에게 평화와 축복이 있기를) 아버지는 그거 모친의 뱃속에 있던 시절에 서거하셨습니다. 어머니 아민에는 예언자님이 6세이셨을 때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래서 예언자님을 숙부(叔父) 아부 탈리브님 키워 주셨습니다.1
예언자님은 (그에게 평화와 축복이 있기를) 25세이셨을 때 사업 덕분으로 알게 되셨던 카드자와 혼례를 올리셨습니다. 31년 동안 지속된 이 혼인에서 아이 6 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영식(令息)들과 영애(令愛)들의 존함은 카슴, 제이납, 루키야, 움무 굴숨, 파트마와 압둘라입니다.2
예언자님은 (그에게 평화와 축복이 있기를) 40세이셨을 때 메카 근체에 있는 `히라` 동굴에서 꾸란의 첫 구절들은 예언자님께서 계시되었습니다. 구절을 제일 먼저 부인 카드자와 공유하시며 부인 카드자님은 최초의 무슬림이셨습니다. 3년 후 하나님께서 예언자님께 (그에게 평화와 축복이 있기를) 공개적으로 사람들을 이슬람에 초대하라는 명령을 왔습니다. 공개적인 초대를 후에 메카 사회의 양반들은 무슬림들을 막히러 위해 처음에 설득해보려고 했고 다음엔 고문했습니다.3 그러한 고문들 때문에 예언자님은 (그에게 평화와 축복이 있기를) 무슬림들 자유 있게 살아갈 수 있을 고향을 찾으러 하셨습니다. 최초의 이민 갈 곳은 아비시니아로 결정되었고, 615년에 일부 무슬림들은 아비시니아로 이민했습니다. 1년 후, 아비시니아로 두 번째 이민은 이루어졌습니다.4
메카에 머무른 무슬림들은, 증가하는 고문과 괴롭힘을 피하기 위해 숙부 아부 탈르비님의 동네에서 함께 머물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원수들은 그 상황을 기회로 보고 무슬림들과 무역을 금지하며 무슬림들에게 도와주는 사람은 사회에서 배척 시킬 것을 결정했습니다. 그러므로 3 년 계속될 보이콧 기간은 시작되었습니다. 보이콧 기간 동안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재산과 건강을 잃었습니다. 그 기간에서 예언자님의 (그에게 평화와 축복이 있기를) 첫 부인 카드자님과 친아버지 같은 숙부 아부탈립님 도 서거하셨습니다.5
메카의 우상숭배(偶像崇拜)자들의 억압을 강화하자 예언자님은 (그에게 평화와 축복이 있기를) 거처를 옮길 수 있는 새로운 이민 갈 것을 찾으러 하셨습니다. 예언자님 어머님의 친척들이 살고 있는 Taif이라는 도시로 이민 가기를 생각 해보셨지만 Taif사람들로부터 기대하셨던 대답을 얻지 못 하셨습니다.6
621년의 순례 기간에 메카로 왔던 마디나 (예스립) 시민 중 사람들은 ‘아카베’이라는 곳에 예언자님과 (그에게 평화와 축복이 있기를) 만나며 이슬람으로 개조했습니다. 그 시민들은 고향으로 들어갔을 때 이슬람 얘기를 많이 했으며 한 무리의 사람들 도 그들 덕분으로 개조했습니다. 그 사람들과 얘기하셨던 예언자님은 그들에게 무슬림들을 위해 살 수 있는 곳을 찾고 있다고 말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그 사람들은 무슬림들 예스립에서 살 수 있음을 약조했으며 예언자가 그곳에 확립할 새로운 나라의 지도자가 된다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회담의 결과로 622년 무슬림들은 예스립으로 이민 가기 시작했어요. 이슬람교의 원수 된 아랍 사회는 이 이민을 막히려고 많은 애를 썼지만 1년 후 무슬림들은 예스립으로 갔으며 이민은 끝났습니다. 이로써 13년간의메카생활이 끝나고 무슬림들에게 메디나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7
무슬림들 예스립 갔음으로 예언자님께서 (그에게 평화와 축복이 있기를) 도시의 이름을 바뀌시며 마디나로 지어 주셨습니다. 예스립 시민들과 조약(條約)을 하셨습니다. 그 조약은 다른 종교를 믿는, 다른 언어를 쓰는, 다른 인종 사람들과 다 같이 어떻게 살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계약은 마디나 헌장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적 출처에서 이루어집니다.8
무슬림들의 메디나 생활에 동요한 메카쪽 적들은 이슬람과 무슬림들을 역사에서 지우기 위해 3차례의 대전쟁을 (大戰爭) 조직했습니다. Badr9, Uhud10 및 Hendek11의 전투입니다. 이슬람의 적들은 이 전쟁에서 기대한 것을 얻지 못했으며 무슬림들은 더욱 강해졌고 메카인 이슬람의 적들은 많은 권력과 위신을 잃었습니다.
628년에 예언자님은 (그에게 평화와 축복이 있기를) 무슬림들에게 움라 (순례절이 아닌 때 수행한 순례) 하려고 준비를 시작해달라는 명령을 하셨습니다. 준비 끝나는 무슬림들과 예언자님은 (그에게 평화와 축복이 있기를) 메카로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Hudaybiyya이라는 곳에 메카인 적들에 의해 `더이상 오지 말 거라`는 경고를 받았고 제지당했습니다. 예언자님은 (그에게 평화와 축복이 있기를) 그들에게 싸우려고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움라 하려고 오는 것을 알려주려고 대리자인 오스만을 메카로 보내셨어요. 대리자가 살인 당했다는 소문이 나왔으니 무슬림들은 이슬람의 적들과 싸우려고 맹세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메카인들은 대리자를 내보냈으며 예언자님과 (그에게 평화와 축복이 있기를) 회담하려고 대리자 3명을 보냈습니다. 회담 후 평화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12
메카인들의 많은 원함을 인정하게 되는 이 협정의 결과로 무슬림들과 우상숭배자들 사이의 평화가 생겼으며 메카인들은 이슬람 나라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 평화 기간 동안 예언자님은 (그에게 평화와 축복이 있기를) 먼저 비잔티움과 사산 제국부터, 주변 통치자들과 편지를 보냄으로써 소통하셨습니다.13
메카인 이슬람의 적들과 채결된 협정 1년 후 우상숭배자들의 동맹 Beni Bekir 부족은 불법으로 무슬림들의 동맹 Beni Huzaa 부족을 공격했습니다. 이 공격의 결국으로 예언자님은 (그에게 평화와 축복이 있기를) 사망했던 동맹들의 비 값을 치러야한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메카인들에게Banu Bakr 부족과의 동맹을 끝내야 한다고 말 하셨으며 그렇지 않다면 Hudaybiyya 조약이 깨지며 싸울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신경 안 쓰는 메카인 적들은 무슬림들과 할 전쟁의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보고 했습니다. 잠깐 후 그 선택 때문에 후회하는 메카인들은 예언자님에게 (그에게 평화와 축복이 있기를) 대리자를 보냈습니다. 회담 중에 무슬림 쪽의 전쟁 결정에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조약은 깨졌기 때문에 630년 때 무슬림들은 피바람을 불러일으키 않으며 전쟁 없이 메카를 정복했습니다. 예언자님께서 (그에게 평화와 축복이 있기를) 대사면 (赦免) 내리시며 우상을 없애 버리라는 명령을 하셨습니다14
무슬림들의 메카인 적들 다음으로 이슬람의 가장 큰 적들은 Sakif와 Hevazin 부족이었습니다. 메카의 정복을 들은 이 부족들은 자기들의 우상들 도 없애질 까봐 두려워서 공격 계획을 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으시는 예언자님은 (그에게 평화와 축복이 있기를) 무슬림들에게 전쟁 준비를 하려고 명령하셨습니다. 메카의 정복 16일 후 두 군대는 Hunayn이라는 곳에 전쟁을 시작하려고 머물었습니다. 무슬림들의 승리로 전쟁은 끝났습니다. 도망치는 부족인들과 도망쳤던 곳들에 다시 싸우며 무슬림들은 다시 승리를 했습니다.15
예언자님과 (그에게 평화와 축복이 있기를) 가브리엘 천사는 매년 라마단 달에 꾸란을 읽으려고 모여 있었습니다. 예언자님께서 (그에게 평화와 축복이 있기를) 별세하시는 해에 독서는 두 번 수행되었습니다. 16
632년에 예언자님은 (그에게 평화와 축복이 있기를) 무슬림들에게 종교적인 자유 있기와 이슬람의 널리 전파 때문에 곧 예언자로써 임무가 끝날 것을 느끼셨으며 무슬림들에게 마지막으로 이슬람의 사회적, 법적 그리고 도덕적인 규칙을 말함으로써 상기시키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언자님은 (그에게 평화와 축복이 있기를) 온 무슬림들에게 순례하기 위해 출발할 것을 공고하셨습니다. 이민의 10년째 기념에 무슬림들은 메카에서 순례를 마무리 손질하며 이드의 (이슬람교의 종교적인 휴일) 4번째 날에17 마지막 설교를 선포했습니다. 마지막 설교 82일 후 예언자님은 (그에게 평화와 축복이 있기를) 별세하셨습니다.18
또한 다음 사항에 유의해야, 예언자님의 (그에게 평화와 축복이 있기를) 시대에서 무슬림들과 비 무슬림 사이의 모든 분쟁과 전쟁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총 수는 약 5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예언자님의 (그에게 평화와 축복이 있기를) 23년 동안 계속된 예언자 생활에 군사 활동은 오직 1,5년이었습니다. 남은 기간을 평화롭게 이슬람으로 초대하는 것을 하면서 보내셨습니다. 예언자님의 (그에게 평화와 축복이 있기를) 전기를 말할 때 전쟁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예언자님의 (그에게 평화와 축복이 있기를) 삶은 전쟁 뿐이라는 것이 아니라 이 전쟁들이 예언자님 (그에게 평화와 축복이 있기를) 삶에서 중요한 순간들이었다는 것입니다.
[1] 마흐뭇 파샤 알-페레키, 앗-타키위물-ʿ아랍이 카브렐-이슬람, s. 33-44.
[2] 입니 잇하크, 엣-시레, s. 59.
[3] 입니 히샴, 엣-시레, I, s. 244.
[4] 입니 잇하크, 엣-시레, s. 210.
[5] 아흐메드 빈 모하메드 알-캇탈라니, 알-메와히불-레둔니야, I, s. 266.
[6] 입니 사드, 엣-타카밧, I, s. 212.
[7] 야쿳, 무ʿ제물-불단, IV, s. 134.
[8] 와크디, 알-메가지, I, s. 176.
[9] 입니 사드, 엣-타카밧, II, 11-27.
[10] 와크디, 알-메가지, I, s. 199-334.
[11] 입니 사드, 엣-타카밧, II, s. 65-74.
[12] 입니 히샴, 엣-시레, II, s. 308-322.
[13] 입니 사드, 엣-시레, I, s. 260.
[14] 입니 히샴, 엣-시레, IV, s. 49-50.
[15] 입니 사드, 엣-타카밧, II, s. 89-90; 117; 127
[16] 부하리, 베둘-와히이, s. 5; 메나큽, s. 25.
[17] 마지막 순례 기간 동안 예언자님께서 (그에게 평화와 축복이 있기를) 전하시는 설교 (일부 예배 및 의식을 수행하는 동안 지역 사회에서 연설)
[18] 입니 사드, 엣-타카밧, II, s. 172-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