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교 따르면 죽음은, 부재(不在), 영원한 이별, 우연 아니면 망함 아닙니다. 이슬람교는 죽음을 삶의 끝으로 안보이며 반대로 영생의 시작으로 봅니다.
이슬람교 따르면 죽음은, 거치를 옮긴 것이며 이승의 임무와 의무의 끝이고 인간 존재의 마지막이 아니며 이 존재를 다른 형태로 계속되는 것입니다.1 예를 들자면 땅의 뿌린 씨가 썩어가면서 열리고 녹색 되고 생명을 얻게 되죠. 토양의 입장에서 썩어가면서 죽게 되는 그 것은 계속 토양으로 살아가기 보다 훨씬 더 중요해요.
죽음이라는 것이 없는 생명의 질서를 상상하면 인구 증가를 지구의 시설 (음식 수자원 대피소 등) 과 비교하면 시설은 부족하겠죠. 인간들도 늙고 건강을 잃은 조상들의 조상들까지 돌 봐줄 테니까 자기 삶을 살 수 있을 시간도 없겠죠.2 이런 입장에서 생각하면 죽음은 축복이죠.
꾸란에서 죽음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이유 다음과 같이 언급되었습니다: 죽음과 생명을 제정하시어 그것으로 너희가 선을 행하는지 시험하고자 하시니 그분은 권능과 지혜로 충만하심이라`3 구절에서도 보다시피 죽음은 시험입니다, 이승에서 억울하게 죽는 사람과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을 동등하게 만들며 약자가 강자에게 복수하는 세상으로의 이행을 의미합니다.
이슬람 선비들은 죽음을 이승에서 사람이 당했던 억울한 일들의 책임자를 책임지게 만들 곳이며 살면서 했던 고생의 상과 이승 시험의 결과를 받으러 입문할 곳으로 정의합니다. 다른 의미로 죽음은 전역을 표현하며 군인 생활 고생의 끝을 의미합니다.7
예언자 모하메드님은 (그에게 평화와 축복이 있기를) “사람은 살아가는 데로 죽을 것이며 죽는 데로 부활할 것이다” 이라고 하셨습니다.8 죽을 사람들 중 일부는 벌과 고통의 후보자이며 일부는 행복함과 평화의 후보자입니다. 어느 편 들을 것은 그 사람들의 살아왔던 인생의 따라 결정됩니다: “길을 제시하여 주었으되 인간이 감사하고 불신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라”9
이슬람교 따르면 이승은 저승의 농지이라고 합니다.10 그래서 사람은 이승에서 자신의 삶을 잘 활용하면 저승에서도 선한 일을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 삶의 모든 순간들은 소중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언제 죽을지도 모르니까요. 사망할 순간 올 때까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하면서 살았던 사람들은 사망할 때 도 사 후에도 하나님의 자비를 얻게 될 것입니다. 꾸란에서 그 사람들의 사망을 다음과 같이 언급되었습니다: “천사들이 선량한 그들의 생명을 거두어 갈 때는 당신들에게 평화가 있으 소서 그리고 천국에 들어 가소서 이것은 당신들이 현세에서 행한 것에 대한 보상이요 이라고 천사들이 말하느라”11
이슬람교 따르면 죽음은 피해야할 상황이 아니며 원하는 상황도 아닙니다. 무슬림은 많은 고생을 해도 절대 죽음을 바라보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고생도 시험이며 버티고 인내하는 사람들에게 어마어마한 보상이 있다고 합니다. 예언자 모하메드님도 (그에게 평화와 축복이 있기를) 이 주제에 대한 다음과 같이 하셨습니다:” 너희들 중에 누구든 자기에게 일어난 안타까운 일들 때문에 죽음을 바라보면 안된다. 만약 죽음을 원하게 될 만큼 심한 고생을 경험하게 된다면 그렇게 말을 하거라 `오 하나님, 사는 것이 제게 좋은 만큼 오래 살게 하시고, 죽음이 제게 좋을 때 죽여 주시 업소서`”12
모든 인간은 죽음의 존재함에 대비해야 합니다. 모든 무슬림들에게 죽음을 생각하며 내세 준비하는 것은 좋은 행동입니다. 예언자 모하메드님은 (그에게 평화와 축복이 있기를) 이 주제에 대한 다음과 같이 하셨습니다: “쾌락을 인생의 쓴맛으로 만든 죽음을 많이 생각하거라”13. 여기서 권면하는 것은 아무 쾌락도 경험하지 않고 살아가기 아니며 의미는 이 쾌락을 주신 이를 생각하고 하나님께 돌아갈 것을 기억하기 입니다.
무슬림들의 무슬림 사회에서 갖는 권리 중 하나는 무슬림이 사망할 때 그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의무입니다: “무슬림은 무슬림에 대해 여섯 가지 권리가 있다. 길거리에서 만나게 되면 인사하거라, 상담 부탁할 때 상담하거라, 기침할 때 `알함두릴라흐` 하면 `예르하무켈라흐`(하나님의 자비를 받길 바라보기) 이라고 말하거라, 병에 걸리면 방문하거라 그리고 사망하면 장례식에 참석하거라” 14
죽을 병에 걸린 자에게 죽음의 대한 좋은 말들과 그 사람을 기뻐하게 만들 말을 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죽게 될 사실은 바꿔주지 않아도 속이 시원할 거니까요.15 환자를 회개(悔改)하고 유언장을 작성하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언자 모하메드님은 (그에게 평화와 축복이 있기를) “남기고 싶은 유언 있으면서 유언장 안 쓰고 이틀 밤을 보내는 것은 무슬림의 할 짓이 아닙니다” 이라고 하셨습니다. 16
내세를 안 믿는 사람들 입장에서 죽음은 피해하는 안 좋은 상황입니다. 허나 꾸란에서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은 다음과 같이 언급되었습니다: “너희가 어디에 있던 죽음은 너희를 뒤 따르매 비록 높은 탑 위에 있더라도 마찬가지라”17
하나님과 심판의 날을 안 믿는 사람들은 곧 사형 받을 사람이 집행 의자를 두려워하는 처럼 죽음을 두려워요. 꾸란에 이 사람들의 상황이 다음과 같이 언급되었습니다: “일러 가로되 너희가 피하려 한 죽음이 실로 너희를 덮치느라 그 때 너희는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분께 보내어지매 그분은 너희에게 너희가 행하였던 모든 사실을 말하여 주시리라”18 이 구절도 보여주는 처럼 죽음을 두려워하고 피해하는 것은 구원할 수 있는 방법 아닙니다.
[1]누르시, 편지들, 리사레이 누르.
[2] “하나님이 장수하게 하사 하나님이 그로 하여 다시 되 돌아가게 하나니 그래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느냐” 야씬, 68.
[3] 물크, 2.
[4] 질잘, 7-8.
[5] 이쓰라, 71.
[6] 알이미란, 145.
[7] 누르시, 슈아랄, 리사레이 누르.
[8] 무나위, 패이줄-카디르 쉐이훌-자미잇-사기르, 뷔, 663.
[9] 인싼, 3.
[10] 아주리니, 케시풀-하파, I/412
[11] 나흐르, 32.
[12] 트리미지, 크야메트, 26.
[13] 트리미지, 쥬후드, 4.
[14] 부하리, 리바스, 36.
[15] 트리미지, 틉, 35.
[16] 부하리, 와사야, I.
[17] 니사, 78.
[18] 주므아, 8.